얼마 전, 미술관에 갔다. 매표소에 표시된 성인, 청소년, 어린이 입장료가 제각기 달랐다. 나이에 따라 값을 다르게 받는다는 것은, 나이에 따라 작품 감상도 다르다고 전제를 한 것일까? 아니면 경제력 없는 연령층에 대한 배려인가? 당연하게 여겼던 기준이 갑자기 알쏭달쏭해졌다. 문득, 나의 기억은 아이들과 놀이동산에 갔던 날로 이어졌다. 어떻게든 놀이기구를 타보겠다며 키재기판 앞에서 까치발을 들던 막내 아이의 진땀 섞인 표정….미술관과 놀이동산은 어른과 아이를 나이로, 몸집으로 각각 구분한다. 그것은 아이가 자라 어른이 된다는 성장의
인천은 한 공간에 선사 유적에서 첨단도시까지 어우러져 있어 ‘지붕 없는 박물관’과 같다. 특히 우리나라가 왕조 시대를 끝내고 근대 국가로 나아갈 때 중요한 관문 역할을 하였기에, 외세와 관련된 흥미진진하고 때론 슬프디 슬픈 이야기로 가득하다. 하지만 한꺼번에 둘러볼 수 없어, 오늘은 격동의 진폭이 가장 컸던 개항기 제물포의 대표적인 장소들을 찾아간다.취재하러 가는 여행은 기사를 써야 하기에 대충 보고 지나칠 수 없고 허투루 넘길 수도 없다. 마치 이번이 마지막 가는 기회인 양, 마음을 다잡고 출발한다. 하지만 여정을 따라가다 보면
대한민국 역사에서 4월은 정치적 희비가 엇갈리는 ‘뜨거운’ 달이다. 1919년 4월에 상하이와 한성에서 각각 임시정부가 수립되었고, 1960년엔 4.19 혁명이 있었다. 그리고 4년마다 4월이면 총선이 실시된다. 최근 다큐멘터리 ‘건국전쟁’의 여파 때문인지 독자 리뷰 중에 이승만 대통령 기사를 원한다는 의견이 많았다. 이젠 직접 뵐 수 없는 분이기에, 이화장梨花莊을 지키고 있는 유일한 며느리 조혜자 여사를 만나 당시의 이야기를 듣기로 했다. 미래를 이끌어갈 청년들을 위한 잡지라는 소개에 흔쾌히 약속이 잡혔고, 정한 날에 종로구 이화
드라마에서 우리는, 원하는 삶을 향해 뚜벅뚜벅 걷던 남자가 어느 날 가업을 이어가라는 아버지의 말에 원치 않지만 돌아서는 스토리를 많이 보았다. 그래서 누구나 아는 ‘낙점 받은’ 대물림이 아닌 경우를 검색하다가 김경진 씨의 블로그를 만났다. 포스팅된 308개의 글에는, 냉이와 쑥 차이도 잘 모르던 부산 아가씨가 잘생긴 총각을 만나 포항에서 신혼 살림을 시작한 일에서부터 농사엔 아마추어였지만 시부모님 하시던 일을 남편과 함께 십수 년째 해가고 있는 ‘또순이’ 모습까지, 많은 이야기가 있었다.그들 부부와 연락이 닿았고, 포항 도심에서
하루 여행자를 위한 제안푸릇한 봄날을 보고 싶은데, 우리나라의 2월은 어디를 가도 봄이라고 하기엔 좀 황량하다. 절기상 입춘과 우수를 넘긴 시점이라, 땅밑에서는 싹눈이 고개를 들어올리고 있지만 코 끝 공기엔 아직 냉기가 남아 있다. 두 계절이 서로 자리를 바꾸는 이 시기에 산과 들은 모두 고만고만한 풍경이다. 그럴 때엔 멀리 떠나는 것보다, 매번 같은 방법으로 다니던 같은 곳을 다른 관점으로 바라보는 여행이 어떨까? 경기도에서 양평과 더불어 당일치기 명소로 어깨를 견주는 파주를 향해 발걸음을 옮긴다.가까운 지인이 파주에 살고 있어서
인터뷰 시작 전, 이 나라에 한국을 모르는 학생들이 있듯이 한국에도 중앙아프리카공화국(이하 중아공)을 모르는 학생들이 있다고 말하자, 그는 활짝 웃으며 이렇게 답했다. “볼펜을 들고 아프리카 지도 위에 정중앙이라 생각되는 지점을 찍어보세요. 그곳이 바로 우리 나라입니다.” 카메룬 · 차드 · 수단 · 남수단 · 콩고민주공화국 · 콩고에 빙 둘러싸인 중아공은 아직 정치, 군사, 경제적 위기도 있지만 발전의 가능성도 매우 큰 나라다. 그런 조국을 위해 봉사할 마음으로 나라 일에 뛰어든 그의 신념이 궁금했다.바쁘신데 인터뷰 시간을 내주셔
3국 정상이 모여 합의한 ‘한미일 청년 서밋’ 개최지난해 8월, 미국 워싱턴 D.C. 인근의 대통령 별장 캠프 데이비드에서 한미일 정상회담이 열렸다. 윤석열 대통령은 귀국 후 회담 성과를 말하면서 “세 나라의 청년 리더들이 함께 모여 글로벌 리더십 역량을 개발하고 연대를 강화하는 ‘한미일 청년 서밋(정상회담)’이 신설된다.”고 했다. 매년 세 나라의 청년 리더들이 모여 연대를 강화하겠다는 취지인데, 올해 7월 초에 열릴 첫 개최지로 부산이 결정되었다.‘한미일 청년 서밋’은 국가정상들뿐 아니라 청년 리더들의 연대감도 구축해두겠다는 관
아주 건강한 사람은 그를 잘 모른다. 아프지 않으니, 도움이 필요하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어딘가 아픈 사람들은 늘 그의 주변을 맴돈다. 게임만 하다가 허리 디스크가 생긴 학생, 몸이 점점 구부정해지는 은퇴한 교수님, 훈련 받다가 통증이 심해진 운동선수들이 자세교정 전문가로 이름난 나범주 소장을 찾는 사람들이다. 그를 만나 어떤 자세가 건강에 좋은 것이며, 그 자세를 지속하기 위한 방법, 그리고 자세가 우리 삶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들어본다.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우리 모두는 자세가 바른 몸을 가지려고 합니다. 전문가 입장에서
아침에 뜬 해가 중천에 올랐다가 내려가듯이, 누구든 태어나면 성장의 정점을 찍고 점점 늙어간다. 현대 의학과 과학은 노화와 질병을 극복할 연구를 해서, 탄생과 죽음 사이의 거리를 더 늘려보려고 노력한다. 생로병사를 피할 길 없는 사람들처럼, 도시도 성장기, 전성기, 소멸기의 과정을 수없이 반복한다. 그 도시에 요즘 ‘재생’이란 키워드가 붙으면서 여러 방안이 생겨나고 있다. 도시재생의 좋은 사례 중에, 브라질의 쿠리치바는 빼놓을 수 없다. 그곳에는, 아픈 도시를 살아 숨쉬게 해준 건축가 출신의 전前 시장 자이메 레르네르Jaime Le
최근 국가보훈부는 경기도 양평군 지평리 남한강변 자전거 도로에 3,421미터 구간을 지정해 ‘몽클라르의 길Road of Ralph Monclar’이라고 이름하였다. 사시사철 평화롭고 고즈넉해 나들이 코스로 알려진 그곳에 이국적인 이름까지 생기니 사람들의 관심이 더 모아지고 있다. 길 이름의 주인공은 6.25 전쟁 때 프랑스 군부대를 이끌고 온 랄프 몽클라르 장군. 도로의 길이는 참전한 프랑스군 연인원 3,421명을 상징한다.프랑스군은 특히 지평리 전투에서 전쟁을 승리로 전환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만약 그때 중공군의 인해전술에
기다림이 상실된 시대아는 밥집이 곧 문을 닫는다고 해서 일부러 들렀다. 고흥 앞 바다가 고향인 주인 부부가 한 상 차려오며 말한다.“이건 살이 한창 오른 삼치로 묵은지 찜을 한 거고, 요건 봄에 지리산 취나물을 말렸다가 들기름에 무친 거고요. 저건 갯바위에서 딴 고동을 삶아 알맹이로만 초무침을 한 거예요. 제가 담근 된장으로 끓인 찌개도 맛보세요.”이 반찬들이 그릇에 담기기까지 자연이 키운 시간과 사람이 들인 정성을 헤아리면 입에 넣기가 아까울 정도였다. 우리의 전통 식재료는 때를 기다려야 밥상에 오를 자격이 주어지는 것 같다. 식
대한출판문화협회 지난해 통계에 따르면 매일 167종의 새 책이 나온다. 1주일이면 1천여 종, 1년이면 6만 종이 넘는 신간이 쌓인다는 말이다. 요즘 나온 책들을 보려고 온라인 서점을 살피다가 눈길 가는 논픽션 책이 있었다. 《아이티 안녕!》이라는 제목이었는데, 여기서 ‘안녕’은 처음 만나 반갑다는 뜻일까, 헤어짐 앞에서 나누는 석별의 정일까, 궁금했다.책을 읽어보니, 주인공은 가난과 무기력이 가득한 아이티에 가서 자신을 던져 헌신하고 있는 37세의 선교사였다. 그곳에서의 고통과 절망, 환희와 기쁨을 글로 옮긴 그는 청소년들에게 아
세계지도에서 스위스는 정말 작다. 땅의 형세나 위치로도 눈에 현저히 들어오지 않는다. 좁은 땅은 온통 척박한 산지라서 사람이 살기 힘들고, 주변엔 독일, 이탈리아, 프랑스, 오스트리아 같은 강대국이 둘러서 있어 기세를 펴기 어려운 지정학적 조건이다. 선천적으로 작고 불리한 환경을 가진 나라, 하지만 지금은 누구도 스위스를 그렇게 인식하지 않는다. 작아도 내실이 탄탄한 ‘강소국’으로 알고 있으며, ‘믿을 만한’, ‘약속을 지키는’, ‘정확한’ 등의 수식어가 쌍둥이 형제처럼 나라 이름 앞에 따라붙는다.국가 이미지는 어느 날 단번에 만들
글 서강현(영국 유학생)안녕하세요? 런던대학교에서 정치외교학을 전공하고 있는 스무 살 학생입니다. 방학을 맞아 새로운 기회를 찾다가 세계장관포럼 서포터즈 프로그램 중 하나인 링크 코리아 활동에 자원했습니다. 저는 앞으로 국제개발이나 협력관계 분야에 진출하고 싶거든요. 한국에 도착하자마자 바로 부산에 와서 세계장관포럼에 참석했습니다. 팀별로 단체 활동을 했는데 처음 만난 사람과 협력하고 소통하는 것이 초기엔 원활하지 못했어요.우리 팀원들은 전공이 다양했어요. 전공에 따라 같은 문제도 접근 방법이 각기 다르지 않습니까? 저는 정치 모델
인터뷰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갑작스레 소낙비가 내렸다. 커다란 박쥐우산으로도 가려지지 않을 만치 빗줄기가 굵었다. 조금 전, 마주앉아 인터뷰했던 데니스 은쿠룬지자 전 영부인은 살면서 돌연히 만난 소낙비가 많았다고 했다. 그래도 아랑곳하지 않고 그는 큰 목소리로 희망을 외쳤다. 우산 쓴 채로 비에 젖은 그날, 신기하게도 마음은 쾌청했다.‘희망은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시작된다.빛이라곤 한 올도 없는 어둠이 진저리 칠 때 고집스런 희망이 솟아난다.그때 희망은 우리 마음에서 ‘포기’라는 글자를 지워버린다.어둠의 터널에서 헤맨 사람은,
바다는 물이 모여 있는 웅덩이도 아니고, 물을 담아둔 커다란 물탱크도 아니다. 흐르고 움직이면서 바닷물을 순환시켜 육지를 비롯한 지구환경에 큰 영향을 미친다. 바다는 생명을 기르고 희귀한 자원을 품고 있는 보물창고다. 지구의 일부로서 바다의 특징은 무엇인지, 인간의 시각에서 본 바다의 의미는 어떤지, 생각해 본다.지구의 일부로서 바다우리가 바다를 ‘드넓고 깊다’고 표현하는데 이것은 인간의 눈으로 볼 때의 맥락이다. 지구의 일부로서 바다는 지구 표면의 70%를 차지하고 있지만, 지표면을 덮고 있는 얇은 막에 불과하다. 바다의 평균 수
교육부 홈페이지를 보면, 현재 61대 장관을 필두로 역대 장관 60명의 사진이 나온다. 1948년 정부수립 후 75년 동안 우리나라 교육부 장관들의 평균 재임기간은 15개월을 넘지 못했다. 이 사실은 백년대계를 바라봐야 할 교육 정책이 녹록치 않음을 시사한다. 누구나 전인교육全人敎育의 중요성을 잘 알고, 깊이 공감한다. 하지만 열여덟 살 고3 때 치른 시험 결과가 평생 주홍글씨처럼 따라다니는 현실 앞에서, 아무도 전인교육이 우선이라고 주장하지는 못한다. 대입의 당락이 앞날의 성공과 직결되는 사회 시스템이 지속하는 한, 인성만으로는
안녕하세요? 무대에 올라와서 발표하는 것이 떨리기도 하지만, 한편으로 무척 설레기도 합니다. 저는 제 마음속을 거리낌 없이 말할 수 있는 사람입니다. 그러나 4년 까지만 해도 저는 제 마음을 항상 가리고 사는 사람이었습니다.제게는 오래 전부터 아주 강한 신념이 하나 있었습니다. ‘내가 잘 보여야 다른 사람이 나에게 잘해줄 것이다.’입니다. 나에게 싫은 말을 하는 친구가 있어도 마음으로는 미워했지만 겉으로는 티를 내지 않았습니다. 그래야 사랑받을 것 같았거든요.그런데 고등학교 때 한 선생님에게는 이것이 전혀 통하지 않았습니다. 저를
안녕하세요? 오늘 여러분께 투머로우 잡지를 읽으면서 생긴 제 삶의 변화에 대해 말씀드리려고 합니다. 저는 2학년 때 대학 도서관에서 이 잡지를 처음 보았습니다. 당시 우리 집 형편이 어려워서 저는 새벽 아르바이트를 하며 학교에 다니고 있었어요. 나 스스로를 챙기는 일도 벅차서 주변 사람들에게 마음을 열지 못했기에, 교우관계나 가족관계가 썩 좋지 않았습니다.그때에 제가 보았던 투머로우 4월호 안에는 어떤 학생이 밝게 웃고 있는 사진과 기사가 실려 있었습니다. 저는 그 학생에게 어떤 행복한 일이 있길래 이렇게 밝게 웃을 수 있는지 호기
2023년 4월 25일 오후 4시, 성남의 서울공항에 우리 교민 28명을 태운 공군 수송기가 착륙했다. 곧바로 트랩이 연결되고 문이 열렸다. 군벌 간의 무력 충돌로 아수라장이 된 북아프리카 수단의 수도 하르툼에서 고립 위기에 처했던 이들이 한국 땅을 밟자 감격 어린 표정을 지었다.수단 교민 구출 작전 ‘프라미스Promise’는 말 그대로 ‘약속’이다.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국가가 최우선으로 지키겠다는 뜻에서 명명되었다. 재외 국민과 외교 주재원들이 무사히 귀국하기까지 앞뒤에서 도운 손길이 꽤 많았다. 버스로 1,100킬로미터를 달려